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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교리-사성제,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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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kcheon 댓글 0건 조회 843회 작성일 13-05-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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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성제(四聖諦)

연기의 법칙을 이론으로 끝내지 않고 해탈과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실천 사상으로 전개시켜 나간 첫 단계가 사성제의 진리이다.

 
사성제는 불교의 교리와 수행을 집약한 가장 체계적인 가르침으로 12연기의 교리 조직이 유전 연기(流轉緣起)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사성제는 특히 환멸 연기(還滅緣起)를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제(諦)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진실, 사실(事實), 진리 등을 가리키는 데 쓰이는 말이며, 동시에 엄숙한 단언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네 가지 거룩한 진리’라는 말이다. 즉 고(苦)·집(集)·멸(滅)·도(道)의 네 가지를 설하여 이것을 신성한 종교적 진리로 삼고 있는 데서 사성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병을 치료함에 있어 먼저 병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원인을 알아낸 다음, 건강
한 상태의 정상적인 표준을 알아서 거기에 맞는 치료 방법을 강구하듯이, 고(苦) 집(集) 멸(滅)을 알고 멸에 이르는 바른 길[八正道]을 알고 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성제(苦聖諦)

우리 인생의 현실은 고(苦)라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이미 삼법인의 교설에서 설명하였다. 이 고제(苦諦)에 대해 경전은 8가지 괴로움[八苦]을 들고 있다.

 
"어떤 것이 고성제인가 생(生)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미운 것과 만나고[怨憎會],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愛別離],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求不得] 것은 괴로움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오취온(五取蘊:나라고 집착(取着)된 몸과 마음)은 괴로움이다." <증아함경 권7 분별성제경>

불교에서 ‘괴롭다’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인생에서의 행복을 전면 부정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일반적으로 물질적·정신적인 여러 형태의 행복을 인정하였다.
 
그러한 행복을 인정하고 찬양한 후, 그것들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쉽다’라고 하였다. 즉 무상한 것은 무엇이든지 괴롭다는 속성을 가진 의미에서 괴로움인 것이다.

 

집성제(集聖諦)

괴로움의 집[苦集]이라는 성제는 위에서 말한 괴로움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는가의 이유를 밝혀 주고 있다.
 
집(集)이라는 술어는 원래 ‘결합하여 일어난다’는 뜻으로 한자의 뜻대로 ‘모은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집기(集起)’라고 하면 뜻이 더 잘 통할 것이다. 이는 괴로음은 연기(緣起)한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가리킨 것이다.

경에서도 집성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것[集]은 재생(再生)의 원인이 되는 갈애(渴愛)로서 격렬한 탐욕(貪慾)에 묶여 있으며, 여기 저기 새로운 기쁨을 찾아 나선다[喜貪].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욕애(欲愛: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망), 유애(有愛:존재 그 자체와 형성에 대한 갈망), 무유애(無有愛: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등이다."<잡아함경 권5>

인간에게 온갖 괴로움과 윤회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탐욕·욕망·갈애·열망 등이다.
 
그러나 연기법에서 보았듯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며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절대적인 원인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고의 근본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는 탐욕도 다른 것, 즉 느낌[愛]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 느낌은 접촉[觸]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어 이러한 과정이 반복적으로 순환되면서, 결국 연기적 의미의 ‘집(集, 緣起)’이 되는 것이다.
 

멸성제(滅聖諦)

괴로움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는 집제(集諦)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개념이다. 고의 원인이 애(愛)·탐(貪) 등의 집기(集起)라면 멸제는 그것을 없애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괴로움 또는 고(苦)의 지속에서 해탈하고 벗어나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생사(生死)의 괴로움이 무명에서 연기한 것이라면 무명의 멸진(滅盡)을 통해 우리는 그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괴로움의 멸(滅)이라는 성제는 우리에게 이 명백한 사실을 깨우쳐 주고, 동시에 괴로움이 사라진 종교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지를 원적(圓寂), 혹은 열반(涅槃)이라고 하여,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생사를 초월하여 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말한 것이다.

 

도성제(道聖諦)

도제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 곧 실천하는 수단을 말한다. 그 방법은 여덟 가지 수행방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곧 팔정도(八正道)의 수행방법이다.

괴로움의 멸(滅)에 이르는 길[道]이라는 도성제는 위에서 제시된 멸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즉 고의 멸진에 이르는 구체적인 실천 항목인 것이다. 종교의 생명은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데 있다는 말이 있다. 걸어간다는 것은 곧 수행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성제의 구체적인 실천 항목으로서는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길’이라 불리는 팔정도(八正道)가 있다.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의 여덟 가지 실천 사항을 가리킨다.

사성제는 이처럼 고·집·멸·도의 네 가지의 진리이다. 이 진리는 고제·집제 이 제(二諦)를 유전(流轉)하는 인과로 나타내고, 멸제·도제 이 제를 깨달음[悟]을 위한 인과로 나타낸다. 곧 고·집 이 제는 세간의 인과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고, 멸·도 이 제는 세간의 인과를 초월하여 깨달음을 얻는 행위이다.

사성제는 고·집 이 제와 멸·도 이 제를 합한 것인데, 고·집 이 제는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근본[集]을 말한 것이고, 멸·도 이 제는 이상향의 세계[滅]와 깨달음[悟]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성제는 괴로움의 근원인 번뇌라는 집(集), 그로 인해 따라오는 괴로움이라는 고(苦), 괴로움을 여의기 위하여 수행하고 얻은 깨달음이라는 도(道), 깨달음으로 얻은 이상향 곧 열반의 세계라는 멸(滅)의 네 가지이다. 곧 고·집·멸·도이다.

사성제는 이러한 고·집·멸·도를 합한 것인데, 그것은 번뇌[集]가 괴로움[苦]을 유발함으로써 그것을 깨닫고[道] 열반[滅]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일컫는다.

 
 

3. 팔정도(八正道)

팔정도는 팔정도지(八正道支) 또는 팔정도분(八正道分)이라고도 한다. 불교를 실천 수행하는 중요한 종목을 여덟 가지로 나눈 것이다.

팔정도는 이 수행방법이 중정(中正), 중도(中道)의 정도로서 완전한 수행방법이므로 성인의 도로 나타내어 성도(聖道)라기도 한다.

이른바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이다.
 

정견(正見) : 정견은 ‘바로 봄’을 뜻한다. 곧 올바른 견해이다. 이 정견은 유무(有無)의 편견을 벗어난 정중(正中)의 견해이다.
 
곧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는 견해이고 바른 견해로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한다. 바로 보는 것이 바른 삶의 시작이다.

즉 사제(四諦), 십이연기, 삼법인의 진리를 바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리의 통찰과 함께 참된 깨달음으로 우주와 인생에 대한 바른 사고 방식을 수립하는 것이다.

 

정사유(正思惟) : 정사유는 올바른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입장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치에 맞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바르게 사유한다.
 
바르게 마음 먹는다’는 뜻으로 ‘생각할 바’와 ‘생각 안할 바’를 바르게 잘 분간하는 것이다.

 

정어(正語) : 올바른 말, 곧 온갖 망령된 허망한 말[妄語], 삿된 말[邪語] 등을 하지 않는 말이 정어이다.
 
올바른 생각에 의해 하는 말이고 항상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하여 구업을 짓지 말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한다. 이는 ‘진실되고 올바른 언어생활’을 말한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이다.

 

정업(正業) : 올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따위의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행동이고 바른 생각과 바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바른 견해’의 적극적 실천인 것이다.

 

정명(正命) :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견해에 입각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衣食住)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이다.

 

정정진(正精進) : 올바른 노력, 한 마음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노력으로 인하여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악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며, 일어나지 아니
한 선을 발생하게 하는 일이며, 옳은 일에는 물러섬이 없이 밀고 나가는 정열과 용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는 바로 불자의 구도 자세라 할 수 있다.


 
정념(正念) : 올바른 정신과 생각, 사념(邪念)을 버리고 항상 향상을 위하여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을 말하며, 바른 생각을 말한다.
또한 ‘바르게 기억하는 것’으로 생각할 바에 따라 잊지 않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항상 명심하고 기억하여 다른 잡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사유와 함께 내면적인 마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마음 속에 정견(正見)이 가득 차고 항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정(正定) : ‘바르게 집중(集中)한다’는 말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인데 ‘삼매(三昧)’라는 음역어(音譯語)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수행법이다.
 
이는 정념이 더욱 깊어진 상태로서, 정념의 성취로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지극히 잘 조화되고 통일된 마음에 온갖 번뇌와 어지러운 대상이 모두 쉬게 되면서 마치 가을 하늘에 지혜의 달이 뚜렷이 빛나는 경지를 뜻한다.

이상이 대개 경전에서 볼 수 있는 팔정도의 설명이다.

괴로움을 없애는[苦滅] 데 이러한 팔정도를 수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연기설에서 연기한 것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사의 괴로움도 연기한 것이므로 실체가 없을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무명(無明), 망념(妄念)에서 연기한 괴로움은 현실적으로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集諦].

괴로움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있으므로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안 되며[滅諦],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진리를 똑바로 응시하고[正見], 그에 입각해서 새로운 종교적 생활을 영위하면서[正思惟~正念] 마음을 진리와 하나가 되게끔 집중하는[正定] 팔정도의 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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